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경찰이 지난 9월 30일 환아 사망 사건 수사를 이유로 진료 중인 대학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한 것은 다른 환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필“수의료 현장에 대한 강제수사 절차와 기준을 제도로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생사 오가는 응급실에 들이닥친 강제수사”
경찰은 지난 여름 이 센터에서 치료받던 환아가 숨진 사건을 수사해 왔으며, 다른 환아들의 진료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장을 집행했다.
앞서 지난 1일 대한소아응급의학회와 전라남도의사회가 규탄 성명을 낸 데 이어 의협과 학회가 잇따라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의료계 반발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의협은 숨진 아이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진료가 한창인 응급실을 강제수사 대상으로 삼은 일은 사실관계 규명과 별개로 따져야 할 문제라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 압수수색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의협에 따르면 소아응급센터에서는 처방과 검사 지시가 모두 응급실 컴퓨터로 이뤄진다.
압수수색 당시 센터에는 경련으로 실려 온 생후 6개월 영아 등 치료 중인 환아들이 있었고, 경찰이 진료용 컴퓨터로 자료를 확인하는 동안 의료진은 자리를 옮겨 업무를 봐야 했다.
의협은 집행 시간이 짧았고 빈 공간을 이용했다는 점이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소청과학회도 소아응급실을 생명이 위급한 아이들이 찾아오고 의료진이 한순간의 판단과 처치에 집중해야 하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영유아와 중증 소아환자는 상태가 급변할 수 있어 짧은 진료 지연이나 의료진의 집중력 저하도 환자 안전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학회는 “수사와 법 집행 과정에서도 현재 치료받는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 진료받을 권리가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의제출로 충분…왜 하필 진료 중 응급실이었나”
의협은 압수수색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이 형사소송법상 임의제출 절차로 진료기록을 수사기관에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자의무기록은 추가 기재나 수정이 있으면 접속 기록을 별도로 보관해야 하므로 수정 이력이 그대로 남고, 당직표 같은 근무 기록도 병원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영장이 필요했더라도 진료기록은 의무기록 부서와 전산 서버에서, 진료 공간의 구조와 장비는 병원과 일정을 맞춘 현장 확인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의협의 판단이다.
의협은 “형사소송법이 강제처분을 필요한 최소한도에서만 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경찰은 왜 하필 진료 중인 응급실이었는지, 압수수색이 꼭 필요했는지 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 과실 단정 못 해”
두 단체는 환아의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 의료진의 책임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소청과학회는 “소아응급환자의 예후에 내원 당시 중증도와 기저질환, 질병의 자연경과, 급격한 악화 등 다양한 의학적 요인이 관여한다”며, “수사에 앞서 진료의 특수성과 임상 상황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협은 과실 여부는 당시 환아의 상태와 진료 여건, 실제 처치를 의학적으로 검토해야 가릴 수 있을 뿐 압수수색으로 밝힐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지난 4월 국회가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 의료사고의 중대한 과실 여부를 전문가가 심의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한 것도 전문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아응급 현장 더 얼어붙을 것”
의협은 이번 압수수색이 가뜩이나 무너지고 있는 소아응급의료 현장을 더 얼어붙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증 환아를 많이 보는 병원일수록 안타까운 사망을 완전히 피할 수 없는데, 그때마다 수사 인력이 진료 중인 응급실에 들이닥친다면 중증 환아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사들부터 현장을 떠날 것이라는 경고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기피가 깊어진 전례도 함께 언급했다.
소청과학회 역시 필수소아의료가 심각한 인력 부족 속에서 현장 의료진의 헌신으로 어렵게 유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와 사회가 위중한 아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고 요구하면서, 최선을 다한 진료에도 나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진료 현장이 곧바로 강제수사 대상이 된다면 중증 소아 진료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결국 아픈 아이들과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 수사 집행 기준 마련 요구
▲의협 “경찰은 경위 밝히고, 정부는 하위법령에 반영하라”
의협은 경기남부경찰청에 진료 중인 소아응급센터를 대상으로 영장을 신청한 이유와 임의제출 등 협조로 자료 확보가 가능했음에도 이를 시도하지 않고 곧바로 영장을 집행한 이유를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돼서는 안 될 진료 공간이라며, 이들 공간에서는 임의제출 등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만 자료를 확보하도록 수사 집행 기준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에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기다리지 말고, 의료사고 수사에서 강제수사보다 의학적 감정과 전문적 검토가 우선하도록 수사기관과 협의해 하위법령에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소청과학회 “진료 연속성 보장하고 전문가 검토 선행해야”
소청과학회는 소아응급실과 신생아중환자실, 소아중환자실을 비롯한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현장의 조사와 강제수사가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진료 연속성을 보장하도록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중증·응급환자 진료 중 발생한 사망이나 중대한 의료사고의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는 진료 당시 임상 상황과 의료행위의 적절성에 대해 관련 분야 전문가의 객관적인 의학적 검토가 먼저 이뤄지도록 절차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 규명과 현장 보호, 대립하는 가치 아냐”
소청과학회는 아이를 잃은 가족을 위한 진실 규명과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 현장의 보호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며, 충분한 전문적 검토와 합리적 절차를 통해 두 가치가 함께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를 살리기 위한 진료가 위축돼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사가 또 다른 아이의 안전을 위협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의협은 수사기관의 정당한 수사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한소아응급의학회와 대한응급의학회 등 관련 학회·의사회와 협력해 의료진이 위축되지 않고 중증 환아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진료 중인 응급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