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대한영상의학회(회장 정승은, 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와 소비자단체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선진입의료기술’ 및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지난 1월 17일 가톨릭의과대학 의생명산업연구원 1002호에서 개최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에 대한 포럼에서 이같은 문제들을 제시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성호 편집이사, 정승은 회장, 최준일 정책연구이사, 이충욱 보험이사, 황성일 총무이사)
◆선진입의료기술 대표적 문제점
우선 대한영상의학회 최준일(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정책연구이사는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의 사용과 보상: 현재의 상황 및 우려’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신의료기술 평가유예와 혁신의료기술평가라는 두 개의 트랙 모두 임시등재라는 한계가 있고, 개발업체 입장에서는 여전히 시장진입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에서는 2024년 말부터 선진입의료기술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아울러 향후 추가로 고려되고 있는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에 의하면 새로운 의료기기 시장진입 절차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식약처 심사만 통과하면 즉시 새로운 의료기술로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최준일 이사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제기했다.
▲근거창출연구 의무화 폐지
이번 개편에서는 근거창출연구 의무화가 폐지됐다. 근거창출연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경한 것이다.
최준일 이사는 “임상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지만 잠재성이 있는 기술을 시장에 선진입 시켜 근거를 창출하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에 완전히 역행한다.”라며, “이 연구와 검증을 선택 조항으로 넣으면 근거 창출 노력은 하지도 않고 조기에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임시등재 기간 연장
임시등재 기간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했다.
최 이사는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특성상 2년이면 충분히 유효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도 2년을 더 연장하는 것은 유효성 검증보다는 수익창출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퇴출기전 폐지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퇴출도 안된다는 점이다.
일단 근거나 유효성이 부족해도 위해만 없다면 선진입만으로 영원히 급여 혹은 비급여로 남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기술과 위해의 인과관계 증명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동의서 구득 강조…환자의 선택권 제한 의료기관도 발생
동의서 구득을 강조했지만 이는 수술이나 시술 등의 독립적인 행위가 아닌 진단보조 의료기술에서는 실제 적용이 어려울 수 있고, 실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탈도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의료기관과 기업들의 수익 창출 도구 우려
전체적으로 매우 기업 친화적이고, 수익 창출 도구가 될 우려도 제기됐다.
최 이사는 “의료의 주체인 환자와 의료진의 입장에서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라며, “평가유예 기간의 연장은 근거창출 연구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지만, 단기간에 매우 많은 증례 수집이 가능한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에서 정말 필요한지 의문스러우며 오히려 임상적 유용성 근거 창출보다 지나치게 의료기관과 기업의 이윤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변화는 실제 기술을 사용하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며 기술 관점이 아닌 의료관점에서 제도에 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의료분야 AI 기대 속 문제점 확인
대한영상의학회 KJR 박성호(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편집장은 ‘진단보조 인공지능은 환자와 의료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그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통제되거나 제한된 연구환경에서 AI가 환자와 의료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잠재력이 확인됐지만, 잠재력 단계를 넘어 실제 진료에 널리 보급되어 개선 효과를 보여준 사례는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큰 기대…하지만 현장 문제 확인
실제 의료분야 AI에 대해 △AI를 통한 진단능력 향상, △비전문가가 AI를 사용해 전문가와 비슷한 수준, △의료인의 업무 부담을 낮추고, 이를 통해 번아웃 방지, △궁극적으로 의료의 결과 향상 등의 기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 및 사용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현재 진료에 단지 AI를 더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고, 오히려 △의료기기 인허가 때의 AI 성능이 현장 진료 상황에서의 성능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 △비전문가에 그냥 AI를 주면 전문가처럼 되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 △무작정 AI를 도입한다고 꼭 의료인의 업무 부담이 줄고 효율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AI 도입, 기대 효과 거두는 방법은?
따라서, AI의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 개선에 도움을 주는 AI의 잠재력이 실제 진료환경에 널리 구현되기 위해 △인간-AI 상호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 과학적인 도입, △적절한 전문가를 통한 AI 활용,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인 AI 성능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다.
▲관련 제도 개선 필요
관련 제도도 이들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마련되고 개선되어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성호 편집장은 “이러한 요소들을 간과하거나 생략한, 특히 단지 경제적 이익 및 산업 발전이라는 동기부여에 의한 근시안적 도입은 AI의 보급에도 궁극적으로 장애가 될 수 있고, 환자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AI의 무분별한 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 인공지능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매우 세밀하고 과학적인 도입이 필요하며 전문가를 통한 성능 모니터링은 필수적 요소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러한 모니터링과 검증을 간과하거나 생략하고 환자 중심적 고려가 아닌 산업적 부분을 강조한 근시안적인 제도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적절한 비용 산정 및 제도 필요
대한영상의학회 이충욱(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보험이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바람직한 기술 적용 방법’이라는 발표를 통해 AI 소프트웨어 도입 활성화를 위해서는 환자, 사용자(의사 및 병원), 개발자, 정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충욱 이사는 “대한영상의학회는 검사비의 약 5% 수준을 적절한 비용으로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방사선 특수영상(예, CT) AI 소프트웨어의 보험수가는 검사비의 2.5%~3%로 책정되어 있다.”라며, “낮은 금액으로 인해 모든 회사가 보험수가 대신 비보험수가를 선택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 “선진입 의료기술, 철저한 검증 및 퇴출 기전 필수”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정부가 추진중인 선진입 제도를 포함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촉구했다.
[사진 왼쪽부터 최준일 정책연구이사, 박성호 편집이사, 이충욱 보험이사, 서준범 교수, 유미화 대표(녹색소비자연대), 홍은심 기자(동아일보), 박찬익 부사장(휴런)]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서준범 교수는 현재 선진입 제도의 최대 문제 중 하나로 혁신의료기술 트랙과 평가 유예제도 트랙이 서로 중복, 상충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준범 교수는 “혁신의료기술 트랙에서 3년간 비급여로 청구하다가 평가에 떨어질 것 같으면 이 트랙을 버리고 평가 유예로 갈아타서 4년간 비급여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술이나 시술을 위해 만들어진 평가유예 제도가 진단보조 인공지능으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라며,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혁신의료기술 트랙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즉시 진입 제도의 경우 아무런 평가없이 비급여로 청구할 수 있게 해주고 평가에 떨어져도 시장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퇴출 기전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선진입 제도의 취지는 물론 건강보험 급여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라고 덧붙였다.
의료 소비자 입장과 관련해 녹색소비자연대 유미화 대표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적용되는 신의료기술이 시장에 진입되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 특히 의사 등 전문가들이 치료나 진료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을 내린 기기나 기술이 퇴출도 안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과 관련해 휴런 박찬익 부사장은 “검증을 통해 실효성에 맞게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당연히 해야한다. 다만 전 세계 수 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근거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학 협력 강화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한영상의학회 정승은 회장은 “현재 의료분야에서 AI를 이용하는 부분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개발과정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과 퇴출이 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라며, “즉시 진입 제도의 목적이 잘 달성될 수 있도록 현 제도를 재검토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검증은 더 강화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의료는 인공지능의 적용에 있어 가장 관심을 받는 분야중 하나이다. 진단 영역, 특히 영상의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2010년대 후반부터 인공지능을 이용한 진단보조 소프트웨어들이 꾸준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