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또 다시 고위험 분만 대응체계의 구조적 결함이 도마에 올랐다.
충북 청주에서 임신 29주 산모의 태아 심박수가 급락해 응급 분만이 필요했지만 충청권 6곳을 포함한 전국 41개 의료기관이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수용을 거절, 약 3시간 20분 만에 부산으로 헬기 이송됐지만 태아가 끝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혈 입원부터 태아 사망까지
지난 1일 오전 30대 임신부 A씨가 출혈 증상으로 청주시 흥덕구 한 산부인과에 입원했지만 태아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상급 의료기관 전원이 필요하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해당 산부인과는 충청권 병원(충북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대전충남대병원, 건양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에 이송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모두 수용 불가 답변을 받았다.
충북소방본부는 상황이 위급하다고 판단해 소방청과 보건복지부에 전국 단위 병상 확보를 요청(수도권 11곳, 충청권 5곳, 영남권 15곳, 호남권 6곳, 강원 2곳, 제주 2곳)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부산 동아대학교병원이 최종 수용 의사를 밝혀 헬기로 이송했고, 2일 오전 이 병원에 도착해 수술을 받았지만 태아는 끝내 사망했다.
A씨는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북대병원, 산과 전문의 1명뿐…권역센터 인력 기준 미달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충북 권역모자의료센터인 충북대병원의 인력난이다.
현재 충북대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산과 2명, 부인과 3명 등 5명이지만, 산과 전문의 1명이 해외 연수 중이어서 사실상 1명이 모든 응급 상황을 감당하는 구조다.
보건복지부 권역모자의료센터 지정 요건도 최소 산과 전문의 4명이지만 산과 인력이 부족해 각 센터가 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충북대병원이 2015년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로 선정된 이후 10년간 국비를 지원받으면서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운영돼 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산 6억 원 지원…관리·감독 사각지대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전국 20곳의 권역모자의료센터에 매년 6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복지부가 각 센터로부터 보고받는 것은 중증 환자 진료 실적뿐이다.
권역모자의료센터가 본래 설립 취지인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의 24시간 전문 치료’대로 운영되는지 점검할 제도적 장치는 물론 현실적 여건도 안되는 상황이다.
◆충북 NICU 1곳뿐…“예견된 사건” 지적
충북 지역은 지난 2024년부터 신생아중환자실(NICU) 운영 병원이 충북대병원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충북 내 중증 신생아의 약 절반 정도만 감당할 수 있고, 나머지는 타 지역 NICU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출산율을 올리겠다며 최근 수년간 십수조 원을 투입하면서도 고위험 분만을 담당할 산과 체계와 NICU 전문의 체계에는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충북대병원도 충북도와 청주시에 신생아 전문의 추가 고용을 위한 지자체 지원금 확대와 기존 지원금의 전문의 인건비·인큐베이터 구입 전용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방치된 체계 붕괴 결과…국가 책임 안전망 구축하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5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건이 수년간 반복된 현장 경고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대전협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의료사고 법적 책임이 현장 의료진 개인에게 귀결되면서 인력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 ▲해당 분야가 미래 세대 전공의에게 비전을 주지 못해 신규 전문 인력이 급감하고 있다는 점, ▲중증 환자를 적극 수용할수록 기관에 손해가 돌아오는 역기능 구조라는 점 등의 구조적 결함을 지목했다.
대전협은 정부와 국회에 고위험 분만·신생아 의료사고에 대한 무과실 보상 기금 조성과 법적 안전망 구축, 현행 시·도별 모자의료센터를 실제 분만 규모와 중증도를 반영한 광역 거점 중심 체계로 재편, 거점 기관 산과·신생아과 전문의 확충과 국가 차원의 인력 양성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시민환자단체는 물론 정치권도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 대응책 논의
이런 가운데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일 충북대병원 현장 점검과 긴급 간담회에 이어 4일에는 중증·권역 모자의료센터,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신생아학회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간담회에서는 전문의 부족, 병상·장비 등 인프라 문제, 낮은 보상 구조, 의료사고 부담 등이 현장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제기됐다.
◆소방청, 중앙구급상황관리센터 컨트롤타워 강화
김승룡 소방청장은 지난 4월 27일 간담회에서 중앙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인력과 권한을 보강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병원을 찾지 못할 경우 즉시 중앙 센터가 개입해 전국 단위로 수용 가능 의료기관을 직접 섭외하고, 고위험 산모는 시·도 관할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신생아 집중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119가 직접 이송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원거리 이송이 필요한 경우 전국 33대의 119 에어앰뷸런스를 적극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비수도권 반복적 비극 재확인…구조적 개편 시급
이번 사건을 통해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결함이 비수도권에서 반복적으로 비극을 낳고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예산 지원만으로는 현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권역별 인력 확충과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 체계 구축,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단기 처방을 넘어선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