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20세기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인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키스’를 의학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의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통섭 연구의 성과로 의학계뿐 아니라 예술계와 대중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유임주(BK21 의과학연구단 단장) 교수팀(김대현, 박현미 교수)은 ‘키스’에 그려진 문양과 상징들을 의학 문헌들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당대에 인류가 꾸준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인간 발생의 신비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113년 만에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교수팀은 클림트의 ‘키스’ 속에 표현된 인간 발생의 장면들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남성의 옷에는 흑백으로 강인한 느낌을 주는 직사각형이 남성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관찰한 정자의 목 부분을 도식화하여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A).
여자의 옷을 살펴보면 계란처럼 둥글게 표현된 난자가 다수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를 살펴보면 머리와 유영하는 듯한 꼬리가 있는 수많은 정자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단 하나의 난자막을 오렌지색으로 그렸다(B).
클림트는 당시 의학자들이 막 밝혀낸 ‘일단 난자가 수정되면 막의 변화를 일으켜 더 이상의 정자가 수정되지 않게 하는 현상’(B2)을 그림(B)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하여 2,4,8세포기(C)로 분화하고 12~32개의 분할 알갱이로 구성된 뽕나무 열매처럼 생긴 오디배(D)로 발달하는 모습을 여러 개의 원형으로 구성된 세포 집단으로 표현해 당시까지 알게 된 인간 발생 첫 3일간의 이벤트를 <키스> 속에 녹여낸 것으로 설명했다.
(그림)교수팀의 구스타프 클림트 作 <키스> 해석
이 해석은 ‘키스’가 탄생한 시기, 1900년 전후 시대의 의학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19세기부터 현미경 광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클림트가 활동했던 1900년 전후는 17세기에 발명된 현미경이 현대 수준의 기술에 도달해 세포 및 세균 미세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덕분에 발생학 연구에서도 커다란 성취가 있었다.
또 클림트가 머물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유럽의 어느 다른 대도시보다 예술가, 작가, 과학자, 의사 등 전문가들의 격의 없는 만남과 토론의 공간을 제공했던 ‘살롱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클림트는 비엔나 의대 해부학 교수의 부인인 베르타 주커칸들이 운영하는 살롱을 출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커칸들 교수와 친목이 있었으며, 당시의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인체에 대한 강의를 요청해 해부학 실습실을 견학하기도 했다.
이때 주커칸들 교수는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독일어 문화권의 다윈으로 여겨지는 사도 에른스트 헤켈의 사상과 세포 그림들을 클림트에게 소개했다.
교수팀은 ‘키스’ 속의 발생학적 도상들이 헤켈의 책에 있는 그림들을 참고한 것임을 제시했다.
‘키스’는 두 연인의 황홀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자, 캔버스 안 두 주인공들의 옷감 속에 생명 탄생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생물학적 진실을 상징하는 아이콘들을 짜넣어 예술과 의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한 걸작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연구책임자 유임주 교수는 “클림트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큰 주제 중 하나는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의 주기였으며, 이런 관점에서 <키스>는 클림트가 인생을 주제로 구성한 작품 포트폴리오의 제1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며,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과학의 발전이 문화 곳곳에 큰 영향을 끼친 20세기 벽두의 대표 사례로 주목해 볼 만하며, 융합이 강조되는 4차 산업시대의 현대인들과 학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인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impact factor=56.3)’ 11월 9일 자에 ‘Gustav Klimt's The Kiss-Art and the Biology of Early Human Development’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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