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같은 수업을 두 번 진행하고 방학 없이 교육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심한 피로와 개인 일정의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교육의 정상화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한계는 고려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껌을 받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도환 교수가 지난 1월 27일 열린 의료정책연구원-한국의학교육학회 공동 세미나에서 ‘의정사태가 의학교육에 미친 영향’이라는 발표를 통해 이같은 내용들을 공개했다.
◆붕괴: “방학도 없고, 끝도 없고”
김 교수는 의대 교수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발표했다.
한 교수는 “의과대학의 교육 현장은 지속적인 불확실성과 긴장 속에서 운영되고 있었다”며 “학사 일정의 유지 여부, 수업 방식의 전환, 학생 복귀 시점에 대한 판단이 각 대학 단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결정들은 단순한 행정 조정의 차원을 넘어 의학교육의 체계성과 연속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교육을 중단할 수는 없었으나, 정상적인 교육을 지속하기에도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토로했다.
의학교육 지원 직원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교수와 학생 그 중간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감정 없는 소모품 같은 느낌”이라며, “나의 감정도 업무의 강도도 한 번도 고려 대상이 안 되었다. 누구도 관심 없는 존재”라는 절규도 있었다.
◆부조화: “시위하던 교수님이 입학시험을 봐요”
교육 현장의 혼란은 단순히 업무 과중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 직원은 “교수님들이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름으로 가운을 벗고 강의실 밖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피로였다”며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렇게 시위를 하던 교수님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는 입학시험 문제를 내고 면접을 진행하는 장면들이었다”고 말했다.
의학교육이 집단 이익을 위한 협상 카드처럼 취급되는 현실도 지적됐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협상에 참여하며 이러한 방식의 논의 구조를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불신과 경계: “학생도, 동료도 믿을 수 없었다”
관계의 단절도 심각했다.
한 교수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극단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너무나도 많이 혼재하다 보니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교육의 관점에서 가장 힘들게 한 것도 학생이고, 가장 지켜내고 싶었던 것 역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간을 지나며 의학교육이 놓친 것이 있다면 학생과의 관계라고 느낀다. 학생들과 나누던 소소한 농담이나 가벼운 몸짓조차도 어느 순간 조심스러워졌다”는 고백도 나왔다.
학생들 사이의 관계도 악화됐다.
“의과대학생들의 서로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고, 집단행동에 동참하게 유도하며, 소신 있는 학생들을 배신자라고 낙인 찍는 집단행동”을 목격한 교수도 있었다.
◆상처와 분노: “고충이나 노력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감정적 상처도 깊었다.
“일부 학생들의 날이 선 언어와 공격적인 태도는 저에게 분명한 상처를 남겼습니다”라는 증언이 있었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학생들이 학교와 교수들에게 갖는 배신감을 드러낼 때였다”는 말도 나왔다.
한 교수는 “그 사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너무나 재미없고, 보람된 일이 없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기도 했다. 고충이나 노력 등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지원 직원의 경우 “축소된 일정 속에서 제공할 수밖에 없는 제한된 학습(연습) 기간에 대해 불만과 불평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반복해서 접할 때마다, 이를 준비하는 한 직원의 입장으로서 분노와 허탈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무력감: “할 수 있는 일도, 해서 될 일도 없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을 느꼈다. 결국 나는 생각을 멈추고 학교 학장단을 따르기로 하였지만, 생각이 많이 달랐다”는 고백이 나왔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해서 될 일도 없었다”는 체념도 있었다.
“의학교육이 의정 갈등을 통해 잃은 것은 나와 같은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풀지 못할 괴로움을 준 것과 그로 인해 열정을 잃게 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하지만 교육자로서의 책무감은 남아 있었다.
한 교수는 “체념이나 포기보다는 ‘버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교육이 중단되거나 왜곡될 경우 그 영향이 가장 크게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도환 교수는 “이 경험은 의학교육이 얼마나 많은 관계와 신뢰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위기 속에서 의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와 직원의 역할이 얼마나 정서적으로도 큰 부담을 동반하는지를 더 분명히 인식하게 만든 시간이었다”고 정리했다.
이어 “교육은 형식적으로 유지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누적된 정서적·신체적 소진은 충분히 기록되거나 공유되지 못하였으며, 이는 향후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의학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