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모든 의사는 의사가 될 때 선언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환자부터 알게 된 모든 것을 비밀로 지키고 결코 누설하지 않겠으며, 심신에 해를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하겠다’는 서약을 한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고, 의사이기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해 대한의사협회 임원진들은 물론 대한의학회, 외과계 관련 학회, 단체 등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학회 “강제적인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합니다”
대한의학회(이하 의학회)는 수술실 CCTV의 강제적인 의무설치는 사안의 무게와 뒤따르는 파장을 고려해 매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의학회가 우려하는 것은 ▲무방비로 노출되는 환자의 인권보호, 의료인의 인권침해의 소지가 매우 높다는 점, ▲대다수 선량한 의료인 모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라는 점, ▲수술실 CCTV 영상 유출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은 무자격자 대리 수술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며, 이에 연루된 환자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의학회는 “의료전문가들이 최대한 자정 기능을 갖추어 스스로 최상의 진료와 최고의 윤리의식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환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 외과계학회 긴급성명서 “세계 최초로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길 원하십니까?”
이와 관련해 5개 외과계학회[대한신경외과학회(이사장 김우경), 대한외과학회(이사장 이우용),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 김웅한),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이필량), 대한비뇨의학회(회장 이상돈)]가 긴급성명서를 통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5개 외과계학회는 긴급성명서를 통해 “일부 수술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은 몇 시간씩 수술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이번 법안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우려 내용은 ▲의료 사고 및 분쟁에 대비해 최소한의 방어적인 수술만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환자의 생존율과 회복율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점, ▲응급수술이나 고위험수술은 기피하게 돼 상급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지고,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는 점, ▲CCTV 녹화로 수술 관련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돼 있어 실질적으로 환자에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집도의의 수술집중도만 저해할 수 있다는 점, ▲환자의 신체가 녹화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 ▲의사들의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인한 의료 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 등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환자 및 보건 의료 종사자 인권을 짓밟고,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대표적인 문제로 제기하는 부분은 ▲법안이 정한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고, 이로 인한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 ▲CCTV 설치와 관련한 구체적인 설치 비용 지원 내용도 없고, 촬영된 영상에 대한 관리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한다는 점 등이다.
병원의사협의회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국민들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입법권을 남용하는 여당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으며, 이러한 폭압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국회에 환자 및 보건 의료 종사자의 인권을 짓밟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추진하는 CCTV 설치 의무화법을 즉각 폐기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 의사들 “의료인과 환자의 인권 침해 발생 우려 높아”
산부인과 의사들도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강제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행복 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으로 이를 부결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행법상 초상권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은 없지만 헌법상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권(제10조)에 근거하는 일반적 인격권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부인과 수술실은 목욕실, 화장실, 발한실, 탈의실 등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와 같이 수술 전 환자가 탈의 후 소독을 시작하게 되어 탈의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라는 설명이다.
여성 환자가 산부인과 수술을 받는 경우 수술포가 씌워지기 전까지는 수술 침대 위에서 전신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산부인과, 비뇨기과, 유방이나 항문 외과 수술 같은 경우는 특성상 수술 부위 소독 및 수술 과정에서 민망한 자세가 노출된다.
특히 산부인과 수술은 거의 전신이 노출되는 상황이 촬영될 수밖에 없고, 이런 부분들이 영상으로 수집된다면 한 번 만들어진 영상정보는 언제든지 유출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이는 환자, 의사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 하는 것은 의료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 및 의료에 대한 지나친 감시이며 의료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고 느끼고 있다”며, “CCTV 설치 논란은 의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것이며, 수술실 의사뿐만 아니라 수술을 보조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동의 없이도 환자 및 보호자의 요청이 있으면 강제적으로 촬영을 의무화 하는 것은 의료진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환자의 사생활 보호 뿐 아니라 의료진의 인권도 심각히 침해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 “의료인은 물론 환자의 인권이 더욱 침해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외과계열 의사들은 질식 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할 것이고, 외과계열을 지망하려는 전공의는 그나마 명맥조차 이을 수 없어 필수 의료의 중단이라는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수술하는 의료진은 수많은 처벌조항의 양산으로 인해 수술 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일부의사들의 일탈을 확대 해석한 소모적이고 과도한 규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경남의사회 “초가삼간 다 태워도 빈대만 잡으면 속이 시원한가?”
경상남도의사회는 “현 정부와 여당에 실망을 넘어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법안은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의사를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며, 해킹 등으로 영상이 유출되었을 때 환자의 인권은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또 “가뜩이나 처참한 외과계 지원율 감소를 더욱 가속화하여 대한민국에서는 수술 자체를 못 받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CCTV가 달린 최첨단 수술실, 하지만 수술할 의사는 없다”며, “일부 극소수의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색출하기 위해 이 법안을 강행하는 것인가? 초가삼간 다 태워도 빈대만 잡으면 속이 시원한가? 일부 수술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CCTV 강제화가 아니라도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원도의사회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강행 강력 반대”
강원도의사회는 CCTV 설치 의무 강제화를 통해 부작용을 예방하는 순기능 이외 역기능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환자의 개인정보와 신체 노출에 대한 보호가 어렵고, 실제 유출시 개인이 입을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어 수술을 수행하는 전문과목의 경우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법안은 연쇄적인 필수과 기피 현상을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수술과 같은 행위는 극히 정교하며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행동이 감시를 받게 되면, 수술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이외에도 CCTV 설치에 관련된 비용 문제, 노동자의 기본권과 인권 침해 문제,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 제3세력에 의한 개인정보 침식 등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원도의사회는 “우리의 중립적이고 정의로운 의견을 묵살하고 독재 정권의 길을 가겠다고 결정한다면, 국가 전체의 정의로운 국민과 함께 응당한 행동으로 답할 것이다”고 밝혔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
대한정형외과의사회(회장 이태연)는 “극소수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단순히 한 집단을 무조건 범죄시 하고 이를 감시해야만 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면 이제 상호 불신과 감시라는 관계로 정립되고, 그 피해는 의료의 위축 및 퇴보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산재된 여러 근본적 문제점을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해서 상호 양측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더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
대한신경외과의사회·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는 “CCTV는 매우 제한적이며, 수술의 실제적인 잘잘못을 알 수 없으며, 수술 중 보여지는 의료진들의 피드백만을 알 수 있어 소송의 쟁점을 흐려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의료인들은 이에 대한 결과를 잘 알고 있으며, 임대차 3법이나 민식이 법처럼, 환자들과 국민들에게 막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리라는 미래를 우려한다. 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못할 것이 없는 정치인이라지만, 그것이 결국 무엇을 갉아먹는 것인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수술실내 CCTV 설치법은 의료진과 환자를 이간질하는 불신의 아이콘이며, 최선의 의무를 다해야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저하시켜, 최선의 진료를 제한하게 될 것이다”며,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시행하려 하는 수술실내 CCTV 설치법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즉 의료는 정치·경제·사회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근원적으로 학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때 더욱 발전한다는 것이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추악한 것이 아니며, 잘못된 것을 두고 보는 것이 비굴하고 추악한 것이다. 이 땅의 의료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며,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의무이다. 우리는 비굴하거나 추악해지지 않을 것이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의사회 “외과계 수술과 지원 기피 및 수련포기 권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의사회는 최근 수술하는 의사에 대하여 민사적 과실을 형사적 과실로 원용하여 형사처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고, 의료분쟁중재원의 과실 단정 감정도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CCTV 설치법안이 최종 의결된다면 수술하는 의사 전과자가 양산되고, 결국 대한민국에서 수술할 의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사회는 “거위의 배를 가른 법안이고 이 법안으로 심각한 수술 의료진에 대한 인권유린, 형사처벌로 인한 위험한 시술 기피 및 소극적 수술로 인해 궁극적으로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게 될 것이다”며, “앞으로 젊은 의사들과 의과대학생들에게 외과계 수술과의 지원 기피 및 수련포기를 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의 문제점으로 ▲CCTV를 설치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 대한 강제화를 하고 불응 시 가혹한 징역형 처벌 조항을 신설했다는 점, ▲수술하는 의사의 동의 없는 강제 촬영으로 의사의 헌법상 기본권이 심각히 훼손된다는 점, ▲수술실 내부 촬영이 의무화되었고, 그 목적이 입법목적에서 범죄 증거수집 목적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점, ▲영상 자료가 분실된 경우 징역형에 처한다는 점 등이다.
이에 경기도의사회는 ▲CCTV 법안강행의 즉각적인 중단, ▲의협 대관라인의 전면적 교체, ▲총회원 궐기를 포함한 강력한 투쟁 등을 촉구했다.
◆세계의사회(WMA) 바브 회장 영상서신 통해 “환자의 치료 선택 기회 박탈”
한편 전 세계 115개국 의사회와 900만명 이상의 의사들을 대표하는 세계의사회(WMA)의 데이비드 바브 회장은 지난 18일 이메일 서신에 이어 영상을 통해 “세계의사회는 환자와의 신뢰와 확신을 깨뜨릴 수 있는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입장을 지지하며 하루속히 동 법안이 폐기되길 촉구한다”며, “수술이나 투약, 의학적 자문 등 의료행위에 해당되는 것들은 모두 환자와 의사간의 상호 신뢰와 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요소는 바로 사생활의 보호이다. 수술실 내 강제적인 CCTV 감시는 끊임없는 상호 불신을 야기시킬 뿐 아니라 수술실에서의 의료행위와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그 어떠한 치료과정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술실 CCTV 설치가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다수의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치료 선택의 기회를 줄이게 될 것이다”며, “이 법안은 실로 ‘(조지) 오웰’적인 성격이 짙어서 자유시민국가라고 하기보다는 전체주의 국가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바브 회장은 수술실에서 감시를 통한 위협과 불신을 퍼트리는 대신, 사생활을 존중하고 전문성과 윤리 행동을 촉진하는 자유 사회의 이념을 따라줄 것도 촉구했다.
이외에도 의료계 많은 협회, 학회,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이번 법안 반대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연이어 반대성명은 물론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