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적자 공공병원을 흑자로 바꾼 의료원장이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정용구 김천의료원장.
정용구 원장은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정년 퇴임한 후 지난 2021년 김천의료원장에 부임한 후 공공병원 경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회장 고도일)는 지난 2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정 원장에게 ‘존경받는 의료인상’을 수여했다.

고도일 회장은 “정 원장은 고려대 의대 신경외과 주임교수, 대한뇌종양학회 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신경외과연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적·조직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며 “김천의료원장으로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공공병원을 30억 원 흑자로 전환시키고 뇌혈관센터, 분만실 등 필수의료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학술대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원장은 공공병원 혁신의 핵심 전략과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한 정책적 과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봉사의 길 선택한 건 받은 혜택 돌려주기 위해”
처음엔 중국에서 새 도전을 계획했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광저우 파트너와 병원 설립까지 준비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계획이 중단됐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그동안 받은 혜택을 되돌아보게 됐다.
대학 시절 등록금 한 번 내지 않고 졸업했고, 교수와 부학장을 지냈으며,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까지 역임했다. 의료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남들보다 높다고 생각했고, 이런 능력을 썩히기 아까웠다.
정년 직전인 12월 말, 신문에서 김천의료원장 공모를 봤고, 서울보다 의료 환경이 부족한 지방에서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응모했다.
◆솔선수범으로 쌓은 신뢰, 원장이 직접 왕진 나서
환자가 병원을 믿고 찾아와야 공공의료의 의미가 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환자 제일의 병원’을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선 신뢰가 우선이었다.
직접 진료 버스 '행복병원'을 타고 산간 지역으로 찾아가는 진료를 나갔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간호 인력과 함께 왕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장이 주도적으로 진료에 나서니 ‘김천의료원이 환자들에게 노력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신뢰가 쌓였다.
◆뇌혈관센터·응급실·분만실 구축 “진료 역량이 의사 부른다”
병원의 진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지방이기 때문에 뇌졸중 환자를 위한 ‘중재적 시술’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머리를 열지 않고 혈관 내로 치료하는 전문가를 모셔와 뇌혈관센터를 만들었다.
필수의료의 핵심인 응급실도 대폭 강화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해 응급실을 활성화했으며,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지역 현실을 감안해 산부인과를 개설하고 인근 산후조리원 위탁 경영을 시작해, 올해 분만 건수가 150건이다.
◆지역 공공병원의 고질적 문제인 인력난 극복
의사가 많아야 진료 역량이 생기는 만큼, 의료진의 숫자가 중요하다. 의료진들에게 급여는 최대한도로 주고,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정해진 휴가 15일은 환자 걱정 말고 다 쓰라고 했고, 외국 학회 참석 등 학술 활동도 모두 지원했다. 월급만 많이 준다고 의사가 오는 게 아니다. 협진할 타과 의사들이 충분한 ‘배후 진료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원장이 솔선수범하고 의료진이 많아져 진료 역량이 증가하니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섰다. 그 결과 김천의료원의 병실 가동률은 전국 공공병원 평균 60%를 훨씬 뛰어넘는 85%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 인력 확보를 위한 특별한 노력
법적 리스크를 줄이고, 배후진료 인프라를 강화해 진료 부담을 낮췄다. 의료사고를 대비해 병원 자체에서 매년 5000만 원씩 적립해 기금을 마련했다.
취임 5년째인 올해까지 의료사고가 나지 않을 만큼 의료사고는 드물지만, 한 번 발생하면 배상금이 매우 높아 의료진에게 부담되는 만큼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의료진을 보호해야 한다.
또 필수응급의료의 배후진료를 담당할 수 있는 타과 의료인력도 강화했다. 배후진료가 되지 않으면 필수의료과 인력의 부담이 커진다.
◆공공병원 구조적 적자…“국가가 100% 보전 필수"
흑자 경영을 달성했지만, 공공병원의 재정 구조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이야기로 공공병원의 어려움이 축소돼 보일까 우려된다. 사실 공공병원은 아무리 잘해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직원 500명 기준 병원이 흑자도 적자도 아닌 ‘제로’ 성과를 내도, 이들의 1년 치 퇴직 적립금 약 35억 원을 추가로 벌어야만 내년에 겨우 제로가 되는 구조다.
민간병원은 비급여 항목으로 수익을 내지만, 공공병원은 비급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주민과 환자에게 혜택을 주는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것이다.
지난해 흑자를 달성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많아져 환자를 압도적으로 많이 본 결과다.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
공공병원의 적자는 필수적으로, 일본처럼 국가나 지자체에서 적자를 100% 보전해줘야 한다. 그래야 의사들이 '적자를 어떻게 면할까'가 아닌, 필수의료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다.
공공병원이 지속 가능하려면 적자를 전액 보전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영자가 필수의료가 아닌 수익성 중심 운영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의사, 간호사 등 보건직 외에 전문성이 없는 사무직 인력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모든 직역이 효율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 원장은 ”공공병원도 환자 중심 철학과 의료진 중심 시스템이 뒷받침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다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