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사의 업무범위를 둘러싼 입법 논쟁이 ‘확대’와 ‘제한’ 양방향에서 동시에 격화되고 있다.
여야 의원과 25개 수요자 단체가 지난 21일 방문재활 확대를 위한 의료기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한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같은 날 의료체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입법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여기에 대한방사선사협회가 22일 한지아 의원 발의 개정안에 대해 “의료기사의 업무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의료기사법을 둘러싼 갈등이 복합적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쟁점 ①…‘지도’에서 ‘처방·의뢰’로의 전환
남인순(더불어민주당)·최보윤(국민의힘) 의원이 여야 국회의원 34명과 공동 발의한 개정안은 현행법상 의사·치과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의료기사의 업무범위를 ‘지도 또는 처방·의뢰’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등이 의사의 처방을 전제로 환자의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12월부터 ‘재활환자 재택의료사업’이 시범사업으로 추진돼 왔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6년째 본사업 전환이 불가능한 상태다.

◆찬성 측 “1970년대 규제에 270만 장애인·1천만 노인 묶여”
남인순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돼 거동불편 노인과 장애인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을 통합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방문재활사업은 의료기사법 미개정으로 본사업 전환이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사 단독 개원은 불가하며, 의료기관 소속 의료기사가 원내에서는 의사의 지도, 원외에서는 처방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전적으로 의사의 통제범위 내”라며 대한재활의학회·대한의사협회와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최보윤 의원은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직역 간 다툼이 아니라 돌봄통합지원법이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민생 인프라”라며, “19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지도 규제에 묶여, 의사의 명확한 처방이 있음에도 거동불편 환자가 집에서 필수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 “환자 안전 위협…현행 체계로도 방문재활 가능”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 법안이 “의료기사가 의료행위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도록 업무범위를 확장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의사의 면허권 침해와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해를 우려했다.
의협은 “의사의 직접적 지도·감독 없이 의료기사가 업무를 수행할 경우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즉각적 소통이 불가능해져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협은 2024년 12월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시행한 ‘재활의료기관 4단계 수가시범사업’에서 양방향 소통 수단을 활용한 지도 형태로 방문재활이 이미 수행된 사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정부의 돌봄통합지원법 추진 로드맵상 물리치료사 방문재활은 안정기(2028~2029년) 시행 예정이어서 법령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안으로는 ‘처방’ 개념 도입 대신 의료기관 외 장소에서도 의사의 지도가 가능하도록 ‘지도’의 공간적 개념을 넓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의협은 22일 추가 입장문에서도 “지도·감독과 처방·의뢰는 단순한 단어 차이가 아니라 면허체계와 의료체계를 흔드는 시도”라며 “통합돌봄체계 안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본 협회라고 다르지 않지만, 이런 상황을 빌미로 체계를 흔드는 것은 오히려 정책 집행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쟁점 ②…한지아 의원 발의 ‘업무제한’ 개정안에 방사선사협회 반발
의료기사법을 둘러싼 논쟁은 업무범위 확대뿐 아니라 제한 방향에서도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대한방사선사협회(회장 박종창)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지아 의원이 발의한 별도의 의료기사법 개정안에 대해 “의료기사의 업무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그간 축적돼 온 전문성 확장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방사선사협회는 “국내외 다양한 임상 사례와 제도적 검증을 통해 의료기사 업무의 안정성과 효과성은 충분히 입증돼 왔으며, 다수 선진국에서는 의사의 의뢰·처방 하에 전문 인력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사고를 이유로 특정 직역의 업무를 제한하려는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의료사고는 개별 직역이 아닌 의료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방사선사협회는 단순한 규제 강화 대신 의무기록 관리 강화와 행위 기반 책임소재 명확화 등 실질적인 환자 안전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왔다고 밝히며, 약 6만 2,000명의 회원과 1만 5,000명의 교수·재학생 등 총 7만 7,000명을 대표해 해당 법안의 즉각적인 재검토를 요구했다.
방사선사협회는 “합리적인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이 강행될 경우 의료현장의 혼란과 국민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5개 단체 성명 “국회는 기득권에 휘둘리지 말라”
지난 21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사회복지협의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대한물리치료사협회 등 25개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국회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즉각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것 ▲정부는 방문재활 제도를 전면 시행할 것 ▲반대 단체는 불합리한 반대논리를 중단하고 환자 중심 돌봄 연대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성명서는 “초고령사회에서 진정한 환자 안전은 환자를 특정 공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 있는 곳으로 찾아가 돌봄을 제공할 때 완성된다”고 밝혔다.
◆28일 법안심사 ‘분수령’…확대·제한 두 개정안 향방 주목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28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일정은 사실상 제22대 국회 전반기 마지막 법안심사로 예상된다.
업무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수요자 단체와 현행 지도·감독 체계 유지를 주장하는 의협, 그리고 업무제한 개정안에 반발하는 방사선사협회 등 의료기사법 논쟁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 조율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