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치매학회가 치매 신약 도입 1년을 맞아 현행 수가체계와 질환 분류, 의료기관 간 연계 부족 등 제도적 한계를 전면 지적하며 정부의 전향적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30분~1시간 설명에 보상 ‘0원’”…상담료 부재가 진료 위축
박기형 대한치매학회 신임 이사장(길병원 신경과 교수)은 지난 11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초기 치매 환자를 진단한 뒤 환자와 보호자에게 질환을 설명하는 데만 3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된다”며 “이 과정은 단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치료 방향과 돌봄 계획을 함께 설계하는 핵심 단계”라고 밝혔다.
치매 진료는 환자 본인뿐 아니라 보호자 교육과 심리적 지원까지 포함된다.
박 이사장은 “환자보다 보호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큰 경우가 많다”며 “보호자에 대한 교육과 케어 없이는 적절한 치료가 지속되기 어렵다”며, “약물 처방도 중요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이해를 돕고 돌봄을 유지하는 과정이 더 핵심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진료 특성은 현행 수가체계에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다른 과에서는 같은 시간에 여러 환자를 볼 수 있지만, 치매 진료는 한 명에게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체계가 처방·시술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설명·상담 중심의 치매 진료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최성혜 전임 이사장(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도 “치매 환자 진료는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수준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를 함께 교육하는 과정이 포함된다”며 “진료 형태만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항암치료의 경우 부작용 설명이나 동의 과정에 대한 수가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치매 치료는 유사한 수준의 관리가 요구됨에도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식약처가 권고한 MRI인데 전액 비급여…“이중 구조” 해소 시급
검사 비용 부담도 핵심 쟁점으로 제기됐다.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등 항체치료제 투여 시 ARIA(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 모니터링을 위해 투약 전후 여러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MRI를 촬영해야 한다.
학회에 따르면 투약 전후를 비롯해 1개월, 3개월, 4개월, 7개월, 14개월 차 등 정해진 주기마다 검사가 필요하고, 부작용 발생 시에는 매달 촬영이 추가된다.
문제는 이 검사 대부분이 비급여로 처리돼 비용을 전적으로 환자가 부담한다는 점이다.
박 이사장은 “이러한 MRI 촬영은 임상의가 자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권고사항에 따른 것”이라며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검사라면 건강보험 적용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질의를 제출해 검토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명확한 답변은 없는 상황”이라며 “고가 약제 사용 여부와 별개로, 안전성 모니터링에 필요한 검사에 대해서는 환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상급종합병원, 질환 분류가 “병목”…치매 진료 위축 우려
의료기관 현장에서도 제도적 장벽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적 한계로 현행 질환 분류 체계를 지목했다.
치매가 B군(일반진료)에 포함된 상태에서 A군(중증) 비율을 70%까지 맞춰야 하는 구조전환 정책이 병목을 유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양영순 보험이사(순천향의대)는 “치매라는 진단 코드 자체가 요양병원 등에서 너무 많이 사용되면 B군에서 C군으로 하향될 가능성도 있다”며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EOAD), 전두측두엽치매(FTD) 등 관리가 중요한 질환군에 대해 우선적으로 중증도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종합병원 “인프라는 충분, 비급여가 지속성 막아”
김연정 광동병원 신경과 과장은 종합병원이 현실적인 치료 거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MRI, 입원 병상, 주사실 등 대부분의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어 아밀로이드 PET을 제외하면 레켐비 치료 수행에 큰 제약이 없다는 설명이다.
가장 큰 제약은 경제성이다. 의료기관 간 연계 부재도 문제로 제시됐다.

◆의원급 “치료는 가능하나 심리적 부담…응급 네트워크가 핵심”
이현아 이현아신경과의원 원장은 의원급에서도 레켐비 치료 수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혈액검사, MRI, 인지검사 등 기본 워크업이 가능하고, PET은 대학병원과 연계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실제 장벽은 심리적 부담이다.
이 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입원, 야간 대응이 가능한 기관과의 네트워크”라며 “미국의 ‘허브-스포크’ 모델을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학회 “네트워크 플랫폼·질환 분류 재편 함께 가야”
정지향 신임 회장(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의료기관 간 연계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환자 수가 많아 입원 후 주사 투여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2차 병원에서는 보험 문제로 입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인근 신경과 의원과 연계해 입원·투여를 분담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며, “병원 간 역할을 나누는 네트워크형 진료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학회 차원에서 연계를 지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합돌봄 예산 부족 우려도 제기
최근 시행된 통합돌봄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호진 정책이사(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시행 초기라 단정적 평가는 어렵지만, 치매안심센터 등 기존 시스템이 통합 안에서도 독립성과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산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최 정책이사는 “현재 통합돌봄 예산이 약 700억~800억 원 수준인데, 과거 치매국가책임제 초기 투자(약 2000억 원)와 비교하면 부족한 규모”라며 “더 큰 사업임에도 재정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기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되, 치매 환자의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며 “임기 동안 상담료와 MRI 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