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오는 2027년 시행을 앞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을 두고 임상 현장과의 괴리 및 하위법령 개선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지난 5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한 제40차 춘계통합학술대회 정책세션 ‘의료분쟁방지법의 국회 통과에 따른 향후의 발전적 논의’에서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과 하위법령 과제를 집중 논의했다.

◆“시행령 규정에 따라 법의 효과도 달라져”
정의석(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발표를 통해 “법안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핵심 쟁점들이 대통령령 등 하위법령에 지나치게 많이 위임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 범위와 중대과실 기준, 설명의무 이행 방식, 책임보험 운영체계 등이 시행령에서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법의 효과와 의료현장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하위법령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위원장이 가장 먼저 꼽은 쟁점은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의 범위 설정 문제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분쟁 조정 절차가 자동 개시되고, 무과실 보상제도와 형사특례 적용 여부 등 여러 제도와 연계된다.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 의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진료와 수술을 고위험 필수의료라고 생각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행위를 고위험 필수의료로 지정할지에 따라 제도 전체의 영향 범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범위를 너무 광범위하게 지정하면 자동개시 대상 사건이 크게 늘어나 의료진 부담이 많아지고, 지나치게 좁히면 법 제정 취지가 약화된다”고 덧붙였다.

◆“12대 중대과실 일부 조항, 해석상 논란 여지 크다”
중대과실 기준도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
개정안은 형사절차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 12개 중대과실 유형을 규정하고 있지만, 일부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필수 기구 불가피한 재사용 등
정 위원장은 “위험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전공의나 보조인력에 대한 지도·감독 문제, 재사용 의료기기 사용 문제 등은 현장에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만성적인 수급난으로 수술용 캐뉼라 등 필수 기구를 불가피하게 재소독해 써야 하거나, 촌각을 다투는 수술실에서 완벽한 타 직역 감독이 어려운 상황이 흉부외과 현장에서는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설명의무 7일 기한
설명의무 규정도 개선이 필요한 영역으로 지목됐다.
개정안은 의료사고를 인지한 날부터 7일 이내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수술 후 패혈증 등 경과가 수시로 변하는 중증 환자의 경우 7일이라는 기한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고, 인지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위법령에 1차 설명과 원인 분석 후 이뤄지는 2차 설명을 구분하고, 불확실성을 고지한 경우를 보호하는 규정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전문성 부족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로 꼽혔다.
위원회 총 20명 중 의사는 5명에 불과해 흉부외과 같은 고난도 필수의료 분야 사건을 충분히 심의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정 위원장은 해당 진료와 술기를 직접 경험한 전문가의 위원회 참여 의무화와 이해충돌 배제 장치를 하위법령에 명시할 것을 촉구했다.
▲책임보험 의무화 “보험료 폭탄” 우려
책임보험과 책임공제 운영 방식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정 위원장은 “고위험 수술을 많이 하는 의료기관일수록 보험료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고위험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병원이 보험료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면 오히려 필수의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가 지원 규모와 방식, 보험 운영 체계의 구체적 설계가 필수의료 유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형사특례제도
형사특례제도에 대해서도 “중대과실이 없어야 하고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책임보험에도 가입해야 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형사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보호는 재량적이지만 의무는 확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위험한 수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해도, 면책해도 안 돼”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라 공정한 구분”이라며, “급성 대동맥박리나 에크모, 폐이식, 흉부 외상 수술 등은 시행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고 시행해도 사망과 장애 위험이 극도로 높은 영역이다.모호한 중과실 기준과 불투명한 심의, 부족한 보험 방치 시 방어적 진료를 유발해 실패한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위험한 수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지만, 위험한 수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진 기본 의무까지 면책해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환자·의료계·복지부 모두 “하위법령이 중요”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도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하위법령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는 “의료사고를 단순한 책임 규명 대상이 아닌 환자안전 사건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필수의료 분야에서라도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받는 사례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안에 찬성했다”며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어질 것으로 본다. 지금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법은 이미 통과됐다. 이제는 통과된 법이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자뿐 아니라 의료계 역시 중요한 파트너”라고 밝혔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설명의무 조항과 헌법상 진술거부권 간 충돌 가능성을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위로·공감·유감 표명은 증거 사용이 제한되지만 의료사고 설명의무에는 별도의 증거 배제 규정이 없다”며 “향후 형사절차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와 충돌할 수 있는 만큼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의사회 강봉수 분쟁조정위원장은 “의료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환자와 의사가 책임을 따지는 구조보다는 불가피하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보상하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신현두 과장은 “중대과실 기준만 하더라도 환자단체는 범위가 좁다고 하고 의료계는 너무 넓다고 하는 등 입장 차이가 크다. 법 시행 과정에서 제도가 현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도 충분히 준비하고 세부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향후 1년 동안 마련될 시행령과 하위법령에서 중대과실 범위, 고위험 필수의료 기준, 자동조정개시 요건 등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법안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며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