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추가 확대하는 배정안을 발표했지만, 2024년 증원 결정 이후 지방의대 현장은 여전히 교육 인프라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속된 지원은 보류되고, 시설은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으며, 학생들의 좌절감은 깊어지고 있다.
◆약속은 컸고, 현실은 달랐다
2024년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당시, 일부 지방의대는 야심찬 확충 계획을 내놨다.
전임교수 대폭 확보, 신축 건물 건설, 해부학실습동 신설 등이 포함됐으며, 2024년 말 국회를 통과한 관련 예산만 163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예산의 집행은 전면 보류됐다.
결국 증원 이전에 확보해둔 여건개선비 잔여금과 본부 시설 예산 등 총 3억원으로 긴급 대응에 나서는 데 그쳤다.
163억원과 3억원의 간극이 지방의대 현장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 테이블에 10명…해부학 실습의 풍경
교육 현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실습 교육이다.
원래 6명이 한 조를 이뤄 시신 한 구를 실습하던 방식이, 정원 급증 이후 10명이 한 조가 됐다. 거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이다.
독립된 해부학실습동 신축 계획은 무산됐고, 현재 공간에 테이블을 10개에서 17개로 늘리는 확장공사가 올해 8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한 의학교육 관계자는 “이 인원으로 시신 한 구를 어떻게 자세히 공부하고 실습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교수는 부족하고, 강의실은 아직 공사 중
교원 확보도 계획에 한참 못 미친다.
증원된 정원 기준으로 최소 200명의 전임교수가 필요하지만, 채용 계획에도 불구하고 정년퇴임과 사직이 맞물리면서 실제 재직 전임교수는 166명에 머물고 있다.
강의실 사정도 마찬가지다.
예과 1학년과 2학년 강의실을 각각 82석, 176석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올해 2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됐다.
전공 과목 수업은 공과대학 강의실과 합강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중 통합 강의실 확보가 완료된 대학은 28교, 통합 실습실 확보 완료는 13교에 불과하다.
◆“유급 안 당하고 적당히 졸업, 그게 목표”
현장의 가장 무거운 목소리는 학생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지방 의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지역의료에 봉사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입학했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다”며 “유급이나 안 당하고 적당히 졸업하고 미국 가는 게 앞으로의 인생 목표가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본과 공부의 스트레스에 더해 24·25학번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인 학번이라는 이유로, 하루하루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본과 4년을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학생들이 꿈꾸던 지역 의료 봉사의 미래는 교육 현장의 현실 앞에서 빠르게 색이 바래고 있다.
◆2026년 ’트리플링‘…더 큰 파고가 온다
현장의 우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4학번과 2025학번이 동시에 본과에 진입하는 ’더블링‘을 경험한 의대들이, 2026년에는 2026학번까지 더해지는 ’트리플링‘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의 한 교수는 “그전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주어진 자원으로 수업 운영이 가능한가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팀 구성을 두 배로 늘려도 양질의 토론이나 활동은 어려웠고, 피드백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
고려대 의대 김도환 교수는 지난 1월 의료정책연구원·한국의학교육학회 공동 세미나에서 “지금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평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정 사태가 의학교육에 남긴 상처를 직시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경고다.
교육부는 이번 추가 정원 배정 이후에도 대학별 이행계획을 제출받아 매년 점검하고, 미흡할 경우 정원 회수 등의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후 점검보다 먼저, 지금 이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