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간호사회(회장 홍정희)가 지난 11월 26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회장 김길원)와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변화하는 보건의료 환경 속에서 병원간호사의 역할 재정립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 설계 방안을 논의했다.
‘간호의 현재와 미래: 변화하는 보건의료 환경 속 전문성의 재정립’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미래 간호의 발전 방향이 제시됐다.
◆ 간호사 역할 확대 위한 제도적 지원 강조
홍정희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간호사들이 과거 위기 상황에서 환자 안전을 지키며 전문성을 입증했지만, 제도적 발전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행사가 단발성 논의로 끝나지 않고 간호사들의 역할 확대와 제도 개선을 위한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길원 회장은 환영사에서 간호사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의료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이해한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간호법 제정과 진료지원 업무 규칙 마련 등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심포지엄이 병원간호사의 역할 재정립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성 기반 주도자로의 역할 재정립 제시
▲변화 대응자에서 전문적 주도자로
신연희 병원간호사회 재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는 첫 번째 발제에서 병원간호사는 수동적인 상황 대응자에서 진료지원 업무를 간호의 영역으로 흡수하여 전문성 기반 주도자로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 재무이사는 이를 위해 현장에 맞는 구체적인 업무범위 법제화, 임상에 맞는 역할 분류와 전문성에 대한 보상 체계, 전문간호사의 상급 업무범위 확대를 통한 의료인력자원의 효율적 운영과 같은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진료지원 전담간호사의 역할별 교육, 상급 업무의 포괄적 수행이 가능한 임상 경력을 갖춘 전문간호사 양성의 토대가 되는 병원간호사 간호인력관리체계 구축과 전문간호사 양성 교육과정의 개혁을 강조했다.
▲전문간호사 제도 정비와 체계적 인력 운영 필요
장석용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두 번째 발제에서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이원 구조와 제한된 의료 인력 상황을 설명하며, 간호사의 역할 확대와 효율적 업무 분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과거 등록간호사(RN) 중심의 인력 운영에서 벗어나, 고도화된 간호 역할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간호사 제도를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경력 개발 경로와 법적·제도적 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국 의료의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장 교수는 간호계가 그동안 간호 전문직에 대한 체계적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문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교육·실습 표준화, 의학적 판단 교육 강화, 전문간호사 제도 정비, 근거 기반 정책 제안, 역할을 스스로 선언·증명·쟁취하는 노력과 같은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미국 전문간호사(NP)는 수십 년간 선언–증명–쟁취를 반복해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며 한국 간호계도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장 전문가들의 종합 토론
종합토론은 홍정희 회장과 김길원 회장의 공동 좌장 진행 아래, 발제자들이 제시한 전문성 기반의 역할 재정립 방향에 대한 현장 및 정책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문현주 성애병원 간호부장은 중소병원은 간호 인력 수급이 가장 큰 어려움이며, 특히 신규·경력 간호사가 3차 병원으로 빠져나가 인력 풀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레지던트가 없는 구조에서 진료지원간호사에게 업무가 과중되지만 보호 장치는 부족해 번아웃이 심화되고, 이는 병동 인력난과 이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밝혔다.
또한 상급기관과 유관 단체가 중소병원의 교육·인력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 지속적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최수정 한국전문간호사협회 회장(성균관대학교 임상간호대학 교수)은 한국 의료 환경을 격변으로 규정하며, 환자를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전문 인력으로 간호사와 전문간호사를 꼽았다. 지난 1년 동안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정 갈등 속에서도 중환자실, 응급실, 항암 병동 등 의료 공백을 막은 것은 전문간호사와 간호사였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전문간호사가 단순히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중증 환자 평가, 시술 보조, 경과 기록 작성, 검사 조정, 환자·가족 상담, 다학제 협력 지원 등 고난도 업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지난 1년 7개월 동안 전공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환자 치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간호사 덕분이라며, 전문간호사가 의료 현장의 핵심 안전망임을 강조했다.
환자의 고통과 불안을 가장 가까이서 이해하고 대응하는 존재는 간호사라며,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연속성 확보에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는 이번 논의를 계기로 전문간호사의 법적·제도적 지위를 강화하고, 의료 현장의 핵심 파트너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하태길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간호현장에서 업무 부담과 처우 문제를 강조하면서, 간호사의 전문성을 체계적으로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교육 과정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빅데이터 등 보건의료 데이터 관리 능력이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정책적 관심과 지원 확대를 당부했다.
함께 참석한 고혁준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간호사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 입법예고 의견 수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의견이 들어와 정리 중이며, 변경의 여지는 항상 있다고 언급하며 병원 현장과 당사자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중환자실 의료 현장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 및 전문성, 책임 문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중환자 치료 과정에서 환자 상태 모니터링과 장기 돌봄, 보호자 교육 등 의료 행위 외의 영역에서 간호사의 기여가 크다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의료진 전체의 전문성과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발전 위한 제도 구축 필요
이번 심포지엄은 간호사를 수동적인 대응자가 아닌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주도적인 의료인으로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발제자들은 한국 보건의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간호 인력 관리 체계를 재편하고, 상급 간호 업무에 대한 명확한 법적 지위와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또한 간호계 내부의 전문성 고도화 노력과 함께, 국민과 미디어가 간호사를 전문적인 파트너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대국민 소통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편 병원간호사회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간호사의 역할 재정립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정책 제언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