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폐고혈압학회가 지난 11일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0회 학술대회 기간 중 기자간담회를 통해 폐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질병 코드 재분류와 신약 접근성 확대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 제도 개선 없인 ‘생존율 향상’ 요원…“전문질환군 A 지정해야”
학회가 요구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질병 분류 체계의 개선이다.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2%로 과거보다 향상됐지만, 일본 등 85%를 넘는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 왜곡된 건강보험 분류 체계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왜곡된 건강보험 분류 체계를 꼽았다.
김대희 총무이사는 “현재 한국형 포괄수가제(K-DRG)의 전문질환군 분류는 수술·시술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고난이도 약물치료가 핵심인 폐동맥고혈압은 ‘기타 순환기 질환’이라는 일반 코드로 묶여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 상급종합병원 구조 개편 방향…더 큰 문제 예고
이러한 분류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개편 방향과 맞물려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희귀질환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폐고혈압이 ‘전문질환군’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대학병원 내 전문 의료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미국 데이터에 따르면 전문센터 진료 시 사망률이 30~40% 감소한다”며 “폐동맥고혈압을 ‘전문질환군 코드 A’로 분리 지정하고,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센터를 유지·육성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10년 이상 진전없는 신약 접근성
신약 접근성도 생존율 향상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라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표준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들이 국내에서는 허가와 급여 등재에 발이 묶여 ‘그림의 떡’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국내에 도입된 치료제는 2006년 트라클리어(보센탄)를 시작으로, 볼리브리스(암브리산탄, 2011), 옵서미트(마시텐탄, 2016) 정도뿐 이다.
특히 G사의 ‘에포프로스테놀(Epoprostenol)’은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표준 치료제’로 불리는 약물이지만,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못한 상태다.
이 약은 미국에서는 1995년, 일본에서는 1999년부터 허가돼 사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경증 및 중등도 폐동맥고혈압 환자에게 1차 치료제로 권고하고 있다.
장항제 보험이사는 약가 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부와 제약사 간의 간극을 신약의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했다.
장 이사는 “정부가 희귀질환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유연한 심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해외에서 이미 표준 치료로 사용되는 신약들이 국내에서도 점차 허가 및 보험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일부 약제는 급여화를 위한 평가 단계에 진입한 상태로, 조만간 국내 폐고혈압 치료 옵션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학술대회 성과와 국제 협력 확대
이번 학술대회는 ‘Dedicated to Cure PH’라는 주제로 16개국에서 약 4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기범 학술이사는 “소아심장학회, 대한심부전학회와 공동세션을 통해 다학제 협력모델을 실제 임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폐고혈압 치료의 미래 방향을 모색하는 실질적인 장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욱진 회장은 “폐고혈압은 더 이상 방치할 난치병이 아니라 조기에 진단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정부, 의료계, 환우회가 함께 실질적인 치료 환경 개선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학회가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 ‘폐,미리’ 캠페인 진행
한편 학회는 폐동맥고혈압 생존율 개선을 위해 대국민 인식 개선을 통한 조기 진단율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허란 홍보이사는 “폐고혈압은 증상이 모호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조기발견이 생존율과 직결되는 만큼, 검증된 의학 정보를 담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 등으로 확산하고, 의료진용 교육 자료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폐,미리(Family)’ 희망 캠페인을 통해 실제 조기 진단 성공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8월에는 국회 정책토론회를 통해 폐고혈압 문제의 공론화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