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회장 이형민)가 29일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응급실 미수용 방지법)에 대해 입법 중단과 현장 전문가 참여를 촉구했다.
◆“미수용 막는 법 아닌, 미수용 없는 것처럼 보이려는 법”
이번 개정안은 응급실 미수용 관련 8개 법안을 통합한 정부대안으로 지난 9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쳐 28일 법사위를 통과했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6개월 뒤부터 현장에 곧바로 적용된다.
의사회는 이 법이 응급실 미수용을 막는 법이 아니라 미수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규정했다.
의사회는 지난 5년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현장과 제대로 된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장 전문의 93%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일부의 찬성을 근거로 마치 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포장해 복지위 소위원회와 상임위원회를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강제수용’이라는 행정적 권위로 의료진 개인에게 떠넘기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고압적 자세에 현장이 무력감과 분노, 좌절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무차별 이송으로 의료진은 물론 치료 중인 환자와 이송된 환자 모두가 위험에 빠질 것이며, 과거 ‘응당법’처럼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 전문의 93% “개정안 반대”…찬성은 2%
의사회가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17개 문항)에서 응답자 299명 중 93%(278명)가 개정안에 반대했다.
찬성은 7명(2%)에 그쳤다.

조항별로는 수용곤란 상황의 실시간 통보가 가능하다는 데 96%가 부정적으로 답했고, 119 사전연락(수용능력 확인) 폐지에는 95%가 반대했다.
정부대안의 이송체계(제48조의2 제1~3항)와 수용기관 지정·의무수용 제도(같은 조 제6항)에도 각각 93%, 92%가 동의하지 않았다.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이 있어도 법적 위험이 줄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86%였다.

이번 개정으로 수용곤란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92%, 지역 이송지침을 강화해도 이송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91%로 집계됐다.
주관식 응답에서는 현장의견 미반영·탁상행정 지적이 7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응급의료 붕괴 우려(52건), 법적 책임 소재(45건), 배후진료·최종치료 역량(42건), 119 불신과 사전연락 폐지 반대(34건)가 뒤를 이었다.
◆의사회가 짚은 개정안 쟁점
▲‘수용곤란 정당한 사유’ 입증 불가능
개정안 제6조 제4항은 수용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시설·장비·인력이 모두 운용 중인 경우, 최종진료 인력이 다른 중증환자를 진료 중이거나 예정된 수술과 시간이 겹치는 경우, 통신·전력 마비와 화재 등 재난 상황 등을 규정했다.
의사회는 “시설·인력·장비와 최종치료 인력의 부족은 실시간으로 객관적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받게 된다면 결국 무조건적 강제 수용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실시간 고지 의무…“제2의 ‘내 손안의 응급실’ 될 것”
개정안은 응급의료기관장이 수용이 어려운 사유가 생기거나 해소될 때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 지체 없이 고지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전담인력을 두도록 했다.
의사회는 응급실에서 매시간 수용불가 상황을 확인·보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예산만 쓰고 방치된 ‘내 손안의 응급실’처럼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정확한 정보 고지의 법적 책임도 모두 현장 의료진이 지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실·119의 수용기관 지정과 의무수용
개정안은 이송병원이 신속히 정해지지 않으면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센터가 중증응급의료센터 등을 수용기관으로 지정하고, 지정받은 기관은 반드시 수용하도록 했다.
의사회는 “최종치료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사전 확인 없는 단독 이송결정과 수용 강제는 기존 환자와 이송 환자 모두를 치명적 위험에 빠뜨린다”고 밝혔다.
▲모호한 면책과 실효성 없는 지역 지침
의사회는 형사책임 면책 범위가 모호해 상황의사·구급지도의사의 책임 한계와 이송결정에 따른 법적 위험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년간 지역 지침과 이송 가이드라인은 현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졸속 시범사업과 검증 없는 지침으로 수용을 강제하는 것은 무책임한 떠넘기기라고 비판했다.

◆13년 이어진 입법 논의…하위법령·지침 번번이 난항
이송 전 수용여부 확인은 2013년 권역심뇌혈관센터 확대와 맞물려 법제화됐다.
2021년 12월 코로나19 시기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을 거절할 수 없다’는 수용거부 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정당한 사유를 둘러싼 이견으로 하위법령은 마련되지 못했다.
2023년 1월 복지부 개정령안도 현장 반대로 국무조정실 규제심사에서 무산됐다.
2024년 4월에는 복지부가 의정갈등 속 수용곤란 해소를 위해 수용불가 사유를 병상포화·수술불가·전문의 부재로 제한하는 지침을 냈지만, 의사회는 오히려 현장의 수용곤란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2025년 11월에는 소방의 강력한 요청으로 사전수용여부 확인 삭제와 수용불가 고지 의무 강화 법안이 추진됐다.
올해 8개 법안을 통합한 정부대안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위원회에 계류됐고, 응급의학의사회·대한응급의학회·대한의사협회가 반대의견을 냈다.
이후 3~6월 호남지역 응급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거쳐 이달 복지위와 법사위를 잇따라 통과했다.
◆“수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수용하지 못하는 것”
이형민 회장은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법에 명시되는 순간 수용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문제는 수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름만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바꾼다고 역량이 나아지지 않는다’,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든 환자가 자유롭게 유입되고 119 이송 환자의 절반 이상이 경증인 현실에서 과밀화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증환자 진료 여력은 확보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법안 조율과 후속 시행규칙 개정에 현장 전문가를, 응급의료 발전계획 수립에 응급의학과를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현장 전문의에 의한 수용여부 결정, 미국 EMTALA와 같은 민형사 면책 기준 마련, 119 유료화 등 과밀화 대책, 취약지 인프라 개선을 위한 유연한 인력계획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정부와 관계기관이 여전히 응급의료기관을 신뢰하지 못해 강제로 집행하려 한다”며, “윤리적 소명을 처벌로 강제하려는 발상은 현장의 반발을 넘어 직업의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