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공의협의회와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 27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에 대해 “청년 세대에게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증원 추진 중단과 현장 의료 개선을 우선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한성존)와 전국전공의노동조합(위원장 유청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앞다투어 내놓는 의과대학 신설과 대학병원 분원 유치 공약이 선거용 선심성 공약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비 지출 급증, 청년 부담 두 배 이상 확대 전망
대전협은 정부의 의사 인력 수급 추계가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AI 기술의 의료 인력 대체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실제 추계 모형에 반영된 AI 생산성 기여도는 약 6%에 그친다는 것이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11차 회의자료에 따르면, 제시된 추계모형 기반으로 진료비를 환산할 경우 2040년 약 250조원에서 2060년 최대 700조원 규모의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재정 문제는 추계위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부 위원 의견으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전협은 “향후 10년 내 생산가능인구가 약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료비 지출의 급격한 증가는 청년 세대의 조세 및 사회보험 부담을 현재 수준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재정적 영향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특히 향후 부담을 감당할 젊은 세대의 사회적 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증원이 아닌 현장 인력 보장이 해법”
두 단체는 정부가 문제의 진단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공의노조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특정 과목 기피, 응급실 환자 수용, 지역 의료 불균형 등의 문제는 오늘날보다 의사 수가 현저히 적었던 과거에는 없었던 문제”라며 “비정상적인 보상 체계와 과도한 법적 부담, 무너진 의료 전달 체계,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한 시스템 문제”라고 진단했다.
대전협은 “지역 의료의 핵심은 단순한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배치와 지속 가능한 근무 환경”이라며 “미래 인력 양성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전공의와 젊은 의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노조는 “정부가 당장 우선해야 할 과제는 시스템을 바로 세워 기존 인력의 이탈을 막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라며 “과도한 법적 부담 완화, 보상·유인체계 정비, 의료전달체계 확립, 과다한 의료 수요 조절을 포함한 의료 정상화의 우선과제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학교육 현장 붕괴 직전, 교육 질 저하 우려
대전협은 현재 의학교육 및 수련 현장이 심각한 한계 상황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 급격한 증원이 이뤄진 일부 의과대학은 24·25학번 더블링 문제와 더불어 강의실과 실습 기자재 부족은 물론 카데바 확보조차 어려운 상태로 파행적인 학사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노조는 “학생들은 무리한 학사일정에 시달리고 있고 전공의 수련의 정상화도 시급한 과제”라며 “지금도 적절한 교육과 수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인원만 늘리는 것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충분한 교육·수련 환경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출되는 의료 인력은 국민 건강에 장기적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물리적·인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정원 확대는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숙의 기간과 정치 분리 요구
대전협은 정부가 과학적 근거 마련을 위해 추계위를 출범시켰지만, 추계위는 출범 이후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결론을 도출했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구정 연휴 전 결론을 내리려 하는 것은 추계위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며, 정치적 일정에 따라 흔들리는 정책은 사회적 갈등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전공의노조는 “수급추계위원회의 목적은 적정 의료 인력을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추계하는 것”이라며 “실제 추계 과정에서는 데이터 확보도 제한되었고 전문과목별 추계도 미비하며 재정이나 정책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 단체는 정부에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섣부른 의대정원 숫자 확정 중단 ▲의료 정상화 우선과제 먼저 시행 ▲최소 1년 이상 충분한 기간을 두고 정확한 데이터 기반 과학적 추계 ▲의대 증원에 따른 국민의료비 증가분과 대책 공개를 요구했다.
대전협은 “지금 대한민국 의료는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정치적 고려가 아닌 교육 및 의료 현장의 현실과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둔 책임 있는 판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