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엌. 빠른 박자와 몸짓, 열정으로 식탁을 책임지는 요리사들이 있다.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곳, 난타 공연장이다.
배우와 관객, 스태프의 호흡이 하나 되는
난타의 뜨거운 현장을 담은 3일이다.
■ 난타, 천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다
2015년 1월 26일. 이순재, 안성기, 류승룡, 김원해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충정로로 모였다. 국내 공연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난타’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서는 17년간 난타 무대에 오른 김문수와 초창기 멤버였던 배우 류승룡, 김원해, 서추자, 장혁진이 감사패를 수상했다.
1997년 10월, 첫 막을 연 ‘난타’는 한국적인 사물놀이 리듬에 요리를 접목한 콘텐츠로 이목을 끌었다. 이후 1999년에는 국내 작품으로는 최초로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2003년에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그 뒤로도 동남아, 중동, 러시아, 동유럽 등 51개국, 289개의 도시를 돌며 국내외의 호평 속에 기록 행진을 이어왔다. 그동안 공연의 주 소품으로 쓰인 칼만 해도 1만 9천여 자루에 이르고, 오이 31만 개, 양파 12만 개, 양배추 21만 개, 도마 2,070개가 ‘난타’ 당했다. 천만 명의 관객들을 웃게 한 난타의 신명 나는 3일을 담았다.
넘쳐나는 열정을 후회 없이 쏟아 부었던 저의 20~30대 인생에 난타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사하겠다고 난타를 나갔었는데 결국 다르지 않더군요. 난타에서 배운 연기와 경험들을 바탕으로 치열한 현장에서 묵묵히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 류승룡 / 배우 -
■ 두드리면 열린다
배우들에게 난타는 쉽지 않은 공연이다. 연기는 기본이고, 접시 던지기, 후추통 돌리기, 야채 다지기 등 재주와 타악까지 익혀야 한다. 그런데 익숙한 동작으로 척척 연습하는 배우들 가운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한 사람, 김다 씨(25)다.
그녀에게는 오늘 무대가 무척 중요하다. 오랫동안 꿈꿔온 서울 충정로 극장에서의 첫 데뷔 무대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부탁해서 미리 연습도 해보지만, 작은 실수가 이어진다.
사실 그녀에게는 팀에서 막내라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이력이 있다. 중국 동포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2011년 우연히 난타를 본 뒤 첫눈에 반했다. 그 뒤 난타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오다 무작정 한국행에 올랐다.
이제는 난타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픈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는 김다 씨. 두드리면 열리는 곳, 난타를 통해 도전하고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아주 행복하고 지금도 제가 행운아인 것 같아요. 전에는 ‘난타 무대에 서고 싶어’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난타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까 (열심히 해야죠). 관중들과 한 호흡이 되어서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김다 (25세) / 배우 -
■ 당신이 모르는 곳, 무대 뒤의 세상
농구 골대부터 만두피와 철판, 테이블 등 온갖 물건들이 튀어나오고, 어디선가 ‘꽥’ 오리 소리가 나기도 하는 무대 뒤의 세상.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무대 스태프들이다. 그들의 하루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공연 전에는 무대 정리와 소품 준비를 책임진다. 공연 중에는 무대 뒤편에서 100분간 대기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배우들에게 필요한 소품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무대에 남은 야채 조각 치우기, 물청소가 기다린다.
이렇게 종일 뛰어다니다 보니 식사는 뒷전에, 녹초가 돼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관객이 모르는 어두운 곳, 배우 못지않은 열정으로 무대를 채워나가는 스태프들. 그들이 사는 세상과 만난다.
어두운 곳에 있지만 그래도 박수 소리 받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인 거죠. 스태프들은 관객들에게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지만 배우들이 이만큼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우리도 옆에서 같이 하기 때문에 더 힘을 받는 거예요.
- 고남용 (39세) / 무대감독 -
■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소리
배우 김곤호 씨(39)의 하루는 난타와 함께 시작된다. 그는 올해로 12년째 난타 극장에 출근하고 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의상 점검이다. 공연 때 입을 옷을 빈틈없이 확인한다.
그러고 나면 개인 소품인 칼과 도마, 야채를 챙긴다. 익숙한 일상이지만, 그는 난타 배우로서의 하루가 늘 새롭다. 주차요원, 수련원 조교, 동대문 옷 장사 일을 전전했다는 그에게 난타는 제2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배우에게는 난타가 자식과 다름없다. 17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다는 김문수 씨(51). 그는 송승환 대표가 난타를 기획하던 초창기 때부터 함께했다.
한국에서는 대사 없는 공연이 생소하던 시절, 김문수 씨는 첫 무대에 올랐던 때의 막막함을 기억한다. 그는 관객들을 웃기려고 직접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느린 동작으로 파리 잡는 장면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었다. 난타와 함께 나이 먹고 꿈을 키우며 살아왔다는 배우들. 오늘도 무대에 오른 그들은 북을 두드릴 때마다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무대에서 놀며 관객들과 호흡하는 즐거움이 저에게는 항상 있는 것 같아요.
북을 정신없이 두드릴 때 가슴에서 뭔가가, 어떨 때는 눈물이 나올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두드리고 있을 때 관객들도 환호하면 뭔가 서로가 합체되는 것처럼 어떨 때는 울컥하게 돼요. - 김문수 (51세) / 배우 -
방송 : 2015년 2월 15일 (일) 밤 11시 5분, KBS 2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