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0명 중 9명 이상은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 후 근무시간이 기존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송명제, 이하 대전협)가 지난 10월 2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번 설문에는 총 1,617명의 전공의들이 참여하였으며, 76.8%가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 이전 근무시간이 주당 80시간 이상이었다” 81.4%가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 이후에도 근무 시간이 동일하다” 8.9%는 “오히려 늘었다”고 답했다.
또 44.5%는 “병원으로부터 ‘수련현황표’를 거짓 작성하라는 직접적인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복지부에 보고하도록 작성되고 있는 ‘수련현황표’가 실제 근무시간과 일치한다는 보고는 23.9% 에 그쳤다.
전공의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은 의료계와 정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문제로 이를 타계하기 위해 지난해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전공의들은 지난 7월부터 주당 근무 80시간 초과하여 근무할 수 없으며, 각 수련 병원은 개정안에 따른 ‘수련현황표’를 작성해서 보건복지부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처럼 수련환경은 나아진 바 없고 수련 병원들이 보건복지부에 보고하는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입원 환자들 각종 의료 사고 위험 노출
특히 일부 전공의들은 주 80시간보다 초과 근무를 할 경우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병원으로부터 강요받았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대전협은 “초과 근무를 한 것이 전공의 개인이 저지른 ‘잘못’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며 “이로 인해 전공의들은 실제로 일을 했으면서도 일을 하지 않았다고 병원 측에 거짓 보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일부 전공의들은 여전히 근로 현장에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협이 지난 4월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약 22%의 전공의가 신체적으로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는데 이 중 50.3%가 교수와 상급 전공의에게 당한 폭행이었다.
대전협은 “개인간의 문제라고 보기엔 너무 많은 비율이었다”며 “이는 살인적인 초과 근무를 어떻게든 해내도록 강제하는 구조 속에서 전공의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할 경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 병원 환경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위험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초과 근무에 지친 몸을 쉬는 대신 폭력이 두려워 진료에 다시 매달려야 하는 전공의가 양질의 의료를 생산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전협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중 15%가 하루 2시간 이하의 수면으로 버티고 있다고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6시간을 초과해서 연속 근무를 하는 전공의도 40%로 나타났다.
대전협은 “의료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하고 싶은 것이 모든 전공의들의 바람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로가 의료 사고로 이어질까봐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한편 사람이 17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면 인지기능의 저하 수준이 운전면허 정지 기준인 혈중 알코올농도 0.05%에 해당하며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면 0.1%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병원과 정부, 숫자 조작만 하고 있어…“암행어사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임에도 병원들과 정부는 개정안만 만들었을 뿐, 이를 시행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전협은 “전공의의 근무 시간 상한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류작업이 아니라 환자 진료를 위한 추가적인 인력 고용이 필요하다”며 “간호사인 PA를 고용해서 의사가 하는 일을 대신하게 하는 관행도 불법임이 재차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일선 병원들은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입원 전담 전문의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위한 방안 마련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공의들에게는 정상화 되었다고 보고하라는 거짓말을 강요하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협은 “정부도 조작되어 보고된 ‘수련현황표’를 근거로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현실을 무시하고, 거짓을 토대로 진행하는 것이며, 복지부가 제시하는 재검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만큼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설문조사에서 한 전공의는 “전공의들은 지금 암행어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자기 병원에 암행어사라도 보내서 수련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