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제도 초기부터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고 비교적 세밀하게 제도를 잘 설계한 나라로 알려진 대만도 의료비 통제에 실패해 건강보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만 성공대학교 웨이후아 티안(Wei-Hua Tian) 교수는 지난 1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최로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2013년도 건강보험 국제 심포지엄에서 ‘대만의 건강보험제도 현황’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티안 교수는 “대만은 총액계약제를 시행한 이후에도 건강보험 적자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의료비 증가속도를 보험료 수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비 증가 억제 등의 기대가 총액계약제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즉 총액계약제 도입 초기에는 일부 흑자가 발생했지만 결국은 적자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총액계약제를 도입한 2002년 87억 대만달러(약 3,269억원)의 재정흑자가 발생했지만 2007년 126억 대만달러(약 4,735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2009년 582억 대만달러(약 2조1,871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는 보험료 증가속도가 급여 및 지출비용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구고령화 및 주요 질환에 대한 지출이 빠르게 증가한 것이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은 건강보험 2세대 개혁을 단행했다.
티안 교수는“대만은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계속 늘어나자 지난 2004년 2세대 개혁안을 입안한 뒤 2011년 1월 수정안 통과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2세대 개혁이란 기존의 일반보험료는 전민건강보험(BNHI)에서 징수하되, 추가로 보험료를 산정·부과하는 것이다.
실례로 강의료 등 고정 수입 이외에 소득에 대해 이를 제공하는 (주최)측과 이를 받는(강연자) 양측이 소득의 2%를 각각 추가보험료로 납부하는 방식이다.
티안 교수는 “2세대 개혁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수입이 상당 수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자원 낭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있고, 예방적 의료서비스 이용 장려 등으로 의료비 지출의 절감을 유도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만은 지난 1995년 전국민에 대한 건강보험제도(NHI, National Health Insurance)를 시행하면서 행위별수가제를 기반으로 출산 등에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지불체계를 운영했고, 1998년 치과진료, 2000년 한방, 2001년 양방 기초진료, 2002년 입원서비스까지 순차적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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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비급여 해법은? 선택진료비 논의 집중…서울 대형병원 환자 쏠림 가속화 우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정부가 현재 추진중인 상급병실료, 간병비와 함께 선택진료비 폐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와 해법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즉 현재 대형병원 수익구조상 3대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이에 대한 보전대책 없이 강행하게 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택진료비에 대한 논의가 집중됐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사실상 선택이 불가능한 선택진료비는 폐지되는게 마땅하지만 이에 대한 보전대책 마련이 우선이다”며 “의료의 질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서울대 권순만 보건대학원장도 “선택진료비 폐지가 고소득층에만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정책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며, 이를 통해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소득계층에 따라 선택진료비 부담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고려대의대 윤석준 교수도 “3대 비급여 해소는 당연하지만 선택진료비 문제는 이미 시장논리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 상태고, 모든 병원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며, 일방적으로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 무임승차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같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라도 선택진료 적용 비율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선택진료제도를 폐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불이익을 보는 병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의과학대 지영건 교수도 “대부분 대형병원에서 발생하는 선택진료비 문제로 인해 환자 쏠림현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며 “선택진료 수입을 줄이면 대부분의 병원들은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고 예측했다.
또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도권 내로 들여오기 위한 작업을 하겠지만 병원들의 지나친 희생을 강요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급병실료에 대해선 일반병실 수가가 너무 낮기 때문에 병실에 따란 차등화 수요를 조절하는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간병비에 대해서는 현재 추진중인 시범사업처럼 간호시스템에 간경비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간호사 부족 등의 문제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무엇보다 3대 비급여는 건강보험만의 영역이 아니고, 보건의료 정책의 문제로 풀어야 하며, 공급자에게만 비용부담을 요구하던 형태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의료적정화 정책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복지부 의견수렴 기대안해
하지만 이런 논의와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도 힘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 대학병원 교수는 “그동안 시행됐던 많은 정책들 중 전문가들이 의견이 반영된 사례는 찾기가 힘들다”며 “많은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예상되는 문제를 제시하며 방향선회 및 재검토 등을 주장했지만 수용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은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도 “이런 심포지엄과 토론회 등은 요식행위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거의 모든 정책진행과정에서 수차례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통해 많은 의견수렴을 했다는 식의 것을 했지만 거의 모든 정책에 의견 수렴이 안됐다는 것만으로도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명이 많은 정책을 관리하다보니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100% 반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며 “우선 시장에 적용해보고 문제가 되면 다시 재적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제발 지금부터라도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 내가 있을 때만 조용히, 편안하게 넘어가자는 생각을 버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을 마련하고 운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