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를 중심으로 전국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선 가운데 큰 의료 대란은 없었다.
하지만 오는 8월 14일(금)로 예정된 대한의사협회 집단휴진에 대한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대전협은 대정부 요구안을 통해 현재 정부 정책의 문제점들과 해법 마련들을 촉구했으며, 의협은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대전협 대정부 요구안…“젊은 의사가 요청합니다”
대전협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들에게 젊은 의사가 요청합니다”라며,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 의대 등 최근 이슈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소통, △전공의가 포함된 의료정책 수립/시행 관련 전공의-정부 상설소통기구 설립,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지도전문의 내실화, 기피과에 대한 국가 지원 등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전공의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환경에서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전공의 관련 법령 개정을 요청했다.
▲의대 정원 4,000명 확충 기준과 근거, 대안은?
대전협은 의대정원 4,000명 확충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졌다.
대전협은 “일부가 주장하는 2000년에 감축된 정원 회복이 이유라면, 이는 과거로 역행하는 결정이고, 다른 나라와 의료환경이 완전히 다른 데도 OECD 평균과 비슷해지는 게 이유라면, 결국 국민이 의사를 보는 데 몇 주가 걸릴 것이다”고 밝혔다.
또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는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을 수립하라고 되어 있지만, 인력 추계는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전문과목별 전문의 수 추계도 되어 있지 않아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넘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늘어난 의사를 어느 지역에 어느 기준으로 분배할 것인지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10년간 지역에서 근무 후에 당연하게도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부작용에 대한 특별한 대책도 없다.
대전협은 “값비싼 항암제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있는데,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는 첩약에 대한 급여화는 저희를 절망스럽게 한다”며, “아무런 기준이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고 이렇게까지 소통 없이 진행되는 게, 혹시나 이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결정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불안하다”고 밝혔다.
▲근로 공백 메우는게 아닌 전문 교과 수련 필요
근로 공백을 메우는 게 아닌 전문 교과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한민국 전공의는 여전히 살인적인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공의법으로 보호받고 있던 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2019년 2월 일주일에 120시간 넘는 근무를 하다 아무도 없던 당직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전협은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업무량 때문에 제대로 된 수련도 할 수 없다는 점, △불완전한 교과과정 때문에 매해 무슨 내용을 공부하고, 무슨 술기를 익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 △어깨 넘어 배우는 것 외에 진료와 연구 때문에 너무나도 바쁜 지도전문의의 지도를 받지 못한다는 점 등의 문제도 제기했다.
대전협은 “전공의를 보호하고 환자 안전을 위해 제정된 전공의법은 수많은 편법과 법 위반으로 인해 저희는 여전히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며, 폭력과 갑질을 당해도 밝히지 못하고, 심지어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다”며, “이러한 전공의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의대 정원이 증가되고 공공의대를 도입한다고 해도 의료 환경이 개선되는 게 아니다. 전공의 수련과 의료전달 체계에 대한 고려 없는 의료정책 계획은 고통받는 전공의 수만 늘리는 결정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또 “젊은 의사가 목표로 하는 것과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것은 같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여 세상의 아픈 곳에서 언제나 묵묵히 버티던 젊은 의사들이 바라는 한 가지는 국민을 생각하는 저희의 생각이 반영되는 것뿐이다”고 강조했다.
내과 서연주 레지던트는 환자분들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젊은 의사들이 제 목숨처럼 돌보던 환자들을 떠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부도, 병원도, 젊은 의사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야 할지 관심이 없습니다. 지방의 병원에는 왜 의사들이 부족한지 내외산소라 부르는 생명을 다루는 과들이 왜 기피대상이 됐는지 소명과 사명이라는 의사의 덕목이, 왜 이젠 바보같은 헛된 꿈이 됐는지. 엉망인 의료체계를 만들어 놓고도, 정부는 아직도 쉬운 길만 찾으려 합니다. 제대로 배우고 수련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은 대한민국엔 없었습니다. 숫자만 늘리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무턱대고 급여화 해주는 것이 미덕은 아닙니다. 국민을 위한다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눈가리고 아웅식의 해법이 아닌, 진짜 해답을 찾아 주십시오”라고 밝혔다.
또 “거리로 나가느라 내일은 못 올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말하던 제게 웃어주던 환자분이 생각납니다. 지독한 병마로 뼈만 남은 몸을 일으켜 잘 다녀오라는 인사에, 죄송함이 앞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여기 있기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젊은 의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환자 곁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떳떳한 의사가 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정부는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에 대해 전면 재논의하라, ▲정부는 모든 의료 정책 수립에 젊은 의사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라, ▲정부는 수련병원을 통한 협박과 전공의들을 상대로 한 언론플레이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의협, “젊은 의사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대국민 호소
대한의사협회도 전국 약 200개 병원에서 전공과목을 수련 받고 있는 전공의들이 거리로 나왔고, 이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의협은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청년들의 외침이다. 의사는 기득권이며 의사의 단체행동은 집단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편견을 잠시 접어두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일하기에도 바쁜 젊은 의사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보아주십시오. 대한민국 13만 의사가 간절하게 호소드립니다”고 밝혔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긴 이유는?
의협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긴 이유를 의사수의 부족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는 병원이 충분한 의사 인력을 고용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교육과 수련을 받는 입장의 전공의는 병원과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며, 불합리한 일이 있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을’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식적인 환경이라면 의사 2~3명이 해야 할 일을 전공의 한명이 해내는 힘든 환경이 수 십년간 이어져 왔다는 설명이다.
▲의사들의 책임도 있어
이러한 상황이 이어져 온 것에는 의사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의사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 전공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한 한때를 병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스스로에 대한 투자와 의사로서의 본분이라 생각하고 이를 미덕처럼 여겨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며, “고통스러운 이 길의 끝에 눈부신 미래와 영광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현실은 이렇게 젊음을 헌신하고 나면 전문의 자격증 한장을 받아 OECD 최저수준의 의료수가,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경쟁하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무한경쟁이 기다리는 강호로 던져져 각자도생해야만 하고, 이것이 보통 의사의 일생이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도 의사양성 과정이 대형병원의 생존을 위한 도구적 활용에 맞추어져 있는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복마전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의료의 장점인 적은 비용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른바 가성비의 열매만을 취해온 최대의 수혜자였다”고 덧붙였다.
▲취약지역과 비인기필수분야 의사인력 부족한 이유는?
취약지역과 비인기필수분야의 의사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국가적인 의사 양성과정이 오직 의사를 도구처럼 활용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의협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필수적인 분야에 그에 걸맞은 지원과 대우를 하기보다, 그저 일회용 건전지로 잠시 활용하기 위한, 얄팍한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며, “수십년간 이어져온 모순을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화하고 고착화시킬 것이 분명한 하책 가운데 하책이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또 “젊은 의사들의 파업에 모든 의사들은 모든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젊은 의사들이 비운 자리는 교수와 전임의(전문의)들이 채우고 있다. 전공의들이 환자와 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으로 움츠려들지 않고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조금의 공백도 생기지 않도록 오늘 하루는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세균(국무총리)본부장은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의료공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매우 크다”며, “전공의들은 병원에 계신 환자의 입장을 헤아려 지금이라도 집단행동은 자제하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정부도 열린 자세로 의료계와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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