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4월 17일 새벽 4시 30분경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에 의한 방화 및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아파트 주민 5명이 얼굴, 머리, 온몸 등을 찔려 사망하고, 17명이 살인미수를 포함, 상해를 입었다.
◆“처참한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만은 막고 싶어 용기를 냈다”
이 사건의 유가족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칼에 찔렸지만 겨우 생명을 구한 A씨 아내를 포함한 생존피해자들은 영구적인 성대마비, 신경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A씨 부부는 “사랑한다는 말도, 잘 가라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처참하게 어머니와 딸을 잃었다”며,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언론을 통해 목격할 때마다 이 사건 당시로 돌아간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얼마나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더 생겨야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는 것인지 공포심마저 든다”고 밝혔다.
또 “‘손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상처와 고통을 겪고 있지만 과연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엄정하게 인정해 줄까 의구심이 들고 두렵기도 해 소송 제기를 많이 망설였다”며, “그러나 자신들과 같은 처참한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만은 막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경찰 부작위 위법성 상당인과관계 규명’이 핵심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경찰 부작위의 위법성과 상당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2019년에 발생한 진주방화살인사건은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첫 번째 사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2016년 수락산 살인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등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그 때마다 대책이 논의됐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인권보장과 사회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면개정됐다.
경찰은 2019. 3. ‘고위험정신질환자 112신고가 들어왔어요’라는 매뉴얼을 만들어 현장에서 경찰관이 대응해야 할 기본조치들을 매우 상세히 규정했다.
문제는 경찰과 지자체가 위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안인득은 2010년 공주치료감호소에 입소할 당시 정신질환(조현병) 판정을 받았지만 2016년 7월 이후 치료가 중단돼 상당기간 방치된 상태에서 이 사건 이전인 2018년 9월경부터 2019년 3월경까지 인근 주민들에 대한 오물 투척, 욕설, 폭력 행위 등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정식으로 접수된 112 신고건만 8회로 그 신고내용을 보면 인근 주민들이 그의 비정상적인 폭력행위나 언동에 겁을 먹고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등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거나, “눈이 풀려 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어 경찰로서는 정신질환자임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3월 10일자 신고건의 경우 쇠망치를 꺼내 피해자를 위협한 사건으로 자타해 우려와 급박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위 지침에 따르면 경찰은 ‘흉기소지 여부나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전 112신고 이력이나 범죄전력, 현재 난동상황 및 약물치료 중단 여부 등을 검토’해 전문의 진단 및 보호요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8회 모두 매뉴얼상 요구되는 ‘가족 등의 진술 청취, 신고 이력이나 범죄전력 검토, 치료 중단 여부 등 검토’ 등의 조치를 행하지 않았다. 또 경찰만이 할 수 있는 전문의에게로의 이송조치도 하지 않았다.
만약 경찰이 8회의 신고가 접수된 기간 중 매뉴얼상 요구되는 검토를 했다면 안인득 사건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안인득 형 “입원이나 치료 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안인득 형이 이 사건 직전까지도 안인득의 문제로 검찰청 민원실, 시청, 주민센터 등을 전전하며 비자의입원이 가능한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를 제대로 안내해주는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결국 입원이나 치료를 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 결과 아무 잘못 없는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자타해 우려가 발생한 경우 그 가족이 원치 않는 환자를 억지로 정신과에 데리고 가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실제 체포감금죄가 인정된 판례가 있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치료중단 상태 및 그 상태에서의 범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찰이 현행법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및 사단법인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이하 정가협)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의 방치, ▲그에 따른 가족들의 부담과 고통,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국가의 부재는 지속되고 있고, ▲사건이 벌어진 후 법원은 법리에 따라 심신미약 감경을 해 주는 모습만 드러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 불신,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법과 치유는 “일선 경찰과 관련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법이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명백한 경찰과 지자체, 국가의 책임이다”며, “사법부만이라도 이러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하게 선언해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법원이 이번 소송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경찰 등 공무원들이 관련 법을 제대로 지키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이번 소송이 정신질환자 본인과 그 가족, 제3자인 일반 국민들이 일상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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